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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눈먼 자들의 도시 by 주제 사라마구

by Digital Miner 2022. 6. 1.

눈먼 자들의 현대 사회

 

어느 날 한 남자가 운전하는 도중에 갑자기 백색 실명을 하게 된다. 첫 번째로 실명한 남자를 시작으로 삽시간 백색 실명이 사람들에게 전염된다. 정부에서는 백색 실명을 전염병으로 파악하고 눈먼 자들을 빈 정신병원에 격리하게 된다. 그리고 수용소 주위에 군인들을 배치하여 눈먼 자들의 탈출을 통제한다. 수용소에서 유일하게 실명된 안과 의사를 따라온 그의 아내만 실명이 되지 않는다. 그녀는 실명되지 않은 눈을 통해 눈먼 자들의 비인간적인 실상을 일일이 목격하게 된다. 수용소 안에서 눈먼 깡패들이 식량을 가지고 소동을 일으키다가 수용소의 한 사람이 불을 질러 상당수는 죽게 되고 의사와 그의 아내,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와 그의 아내, 검은 안대를 한 노인,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 사팔뜨기 소년만이 생존하여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지만 의사의 아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 있었다. 거리는 쓰레기, 오물, 비위생적인 냄새로 가득 차 있었고 이러한 비인간적인 현실을 의사의 아내는 모두 목격하고 그들의 무리를 돌본다. 그러던 중 첫 번째 눈이 먼 남자를 시작으로 다시 시력을 회복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책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 이 문구에는 저자 주제 사라마구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저자는 비단 물리적 실명 상태로 인한 고통이 무엇인지만을 전달하려고 이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은 현대인들 또는 그들이 이루고 있는 현대 사회를 지칭하는 듯하다. 현대인들은 도덕, 인간의 존엄성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지만 이 가치들이 보이지 않는 척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를 자행한다. 즉 저자는 도덕성이 결여되고 비인간적인 현대인들을 진정한 눈먼 자들이라고 고발한다. 저자는 인간의 시력을 빼앗음으로써 눈먼 자들이 숨기고 있던 본성들을 낱낱이 보여주었다. 이는 현대인들이 표면적으로는 도덕적인 것을 중시하고 타인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척하지만 실상 내면을 파고들면 이 책의 눈먼 자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현대 한국 사회도 저자의 쓴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책을 읽은 한국인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인간답지 못하다. 학창 시절부터 서로를 경쟁시켜서 남을 밀어내야 내가 살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통해 학생들에게 이기주의를 주입시킨다. 학생들은 연대의식이라는 인간적인 가치를 형식적으로 교육받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을 줄 세우고 등급을 매기면서 그러한 가치를 실현할 수 없게 만든다. 학교는 학생들의 인격도야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이 몇 등을 했고 어느 대학을 갔는지가 중요하다. 사회에서는 개인의 가치를 그 사람의 인격이 아닌 연봉, 학벌 등으로 평가한다. 우리는 인간이 존엄성을 가진 귀한 존재이므로 인간이라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적인 가치를 알고 있지만 실상 어떤 사람이 소중한 이유는 그가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어떤 대학 출신이고 연봉이 얼마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사회는 한국인들을 눈멀게 만들고 있다.

 

한국 사회는 공동체주의라는 탈을 쓰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주의라는 가치가 지역이기주의, 학내의 집단 따돌림 등으로 악용되어 나타난다. 우리 사회가 겉보기에는 인간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탈을 벗겨내기만 하면 책 속의 눈먼 자들의 도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 희망은 바로 짐승보다 못한 혼돈의 도시에서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이다. 그녀는 눈먼 자들을 위해 희생을 한다. 그 과정에서 눈먼 자들에게 연대의식이라는 인간적인 가치를 몸소 가르쳐 준다. 그래서 그녀의 무리는 비로소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검은 색안경을 꼈던 여자는 검은 안대를 한 노인과 인간적 교감을 바탕으로 눈이 회복된 후에도 그와 함께 있기를 다짐한다. 이 모습은 그녀가 과거에 없던 연대의식, 인간애라는 인간적 가치를 의사의 아내를 통해 배우게 된 것이다. 그녀는 눈먼 기간에 물리적인 눈은 멀었지만 진정한 내면적 가치의 눈은 비로소 뜨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도 의사의 아내처럼 진정으로 눈뜬 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희생정신 덕분에 병든 사회가 조금씩이나마 바뀌고 있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눈먼 현대인들이 진정한 시력을 회복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 이러한 존재들이 많아진다면 저자의 의도대로 정말 휴머니즘적인 사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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